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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서원은 없었다! 경주 옥산서원

사랑나누미 2011. 9. 7. 12:41

경주의 숨은 비경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서원은 없었다!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운 이유, 시원한 물과 짙푸른 초록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겠지요. 깊은 그늘을 드리운 아름드리나무 아래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서(避暑)가 되는 여름날의 오후. 생각만 해도 시원합니다.

 

 

 

 

요즘은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있고, 땅의 기운에 따라 더움과 시원함의 경계가 뚜렷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쉬기 위해선 떠나야 하지요. 하지만 불과 100년, 아니 50년 전만 해도 내 집 앞이 피서지요, 우리 동네가 쉼터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부하는 곳이 곧 무릉도원이었던 때도 있었지요. 자, 그럼 한번 찾아볼까요? 경주에 숨어 있는 절대 비경을 말이죠.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옥산서원’

 

경주시 안강읍. 안강평야라 불리며 영남지방에선 기름진 곡창지대로 알려진 땅입니다. 에둘러 산을 병풍삼아 넓은 평지가 이어지고, 풍성한 곡식이 열리던 비옥한 땅. 땅의 기운이 좋다 보니 이곳으로 낙향한 선비들도 많았지요. 특히 최근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500년을 이어온 명문가 마을로 그 학문적 소양의 깊이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정도입니다. 모름지기 양반이라 하면 집이 있고, 산속 어느 틈엔가 별장이 있어야 마땅하지요.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1572년(선조 5년)에 경주 부윤 이제민과 도내 유림들의 뜻으로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입니다. ‘옥산(玉山)’이라 사액되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지요. 모진 세월 속에서도 은근하게 지켜온 절대 비경.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닦으러 왔다가 그만, 신선이 될 것만 같은 곳입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가족 나들이객이 이곳을 찾아 들어옵니다. 사실 아는 사람만 아는 아지트라고 해도 될 텐데요. 산에서 바로 흘러내려오는 물이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천연 수영장으로 탄생하고, 덩치가 좋은 고목들은 넓은 그늘을 내어줍니다. 조금만 더 어렸다면 풍덩~ 뛰어들고픈 맘이 가득했더랬지요.

 

 

시흥이 절로 돋는 ‘독락당’

 

 

 

 

옥산서원 뒤에 있는 아담한 사랑채. 이곳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짓고 머무른 공간입니다. 이 정도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니 별장이라 해야 마땅하겠네요. 일명 ‘옥산정사’라고도 불리는 ‘독락당’. 대청에 앉아 계곡을 내려다보면 시흥이 절로 돋을 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 집을 짓되 최대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외려 집이 자연인지, 자연이 집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자연융화적인 의도를 충분히 드러낸 건축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독락당’은 기존 별장 건물 형식에선 찾아보기 힘든 아주 특별한 공간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높은 바위 위에 기둥을 걸치고 툇마루를 내어 놓은 것만 봐도 이 산과 계곡의 기운을 얼마나 집 안으로 들이고 싶어 했는지 알만 하지요. 이런 집에 며칠만 묵으면 1년 동안 쓸 글을 다 토해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후훗.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 그 옛날 우리 선조들도 이 땅의 귀함을 알았겠지요. 깊고 깊은 골짜기였을 ‘옥산서원’과 ‘독락당’. 조금 이기적인 마음으론 쉬이 소개하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과감히 소개합니다. 경주의 매력을 한 뼘 더 알리기 위함이지요.

 

 

한국농어촌공사

3기 블로그 기자

하 경 아

 

출처 : 촌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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